새로움의 또 다른 의미, 스와치

스와치를 통해 떠올릴 수 있는 것들

‘스와치’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무리 길어도 1년을 넘겨 판매하지 않는 스와치만의 영업방식과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디자인들, 동화적 상상력에서부터 21세기 디지털 감성까지 맞추어 내는 혁신성은 스와치의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플라스틱 싸구려 시계라는 혹평을 감내해야 하는 스와치만의 아픔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손목시계와 플라스틱 시계를 만들고, 페이저 시계와 인터넷 시간의 개념을 도입한 최첨단 시계로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는 스와치는 새로움의 또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서 있다. 세계 시장에서 스위스와 시계 산업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매김하며 사람들로부터 그토록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가 바로 ‘새로움’이다.


Nicolas Hayek의 등장

최고의 정밀기술로 세계 시장의 3분의 1이상을 점유하던 스위스의 시계 산업은 1970년대 중반 저렴한 노동력과 대량생산 방식을 무기로 한 일본과 홍콩의 저가 시계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가격 경쟁력을 잃은 스위스의 시계 산업은 저가시계의 생산에서 중가시계로 눈을 돌렸으나 이 또한 얼마 되지 않아 위협받게 되고 74년 9천 1백만개에 달하던 생산량이 83년 4천 3백만개로 줄어들며 시계 강국으로서의 자존심에 심한 손상을 입게 되었다.

스와치 그룹의 전신인 ASUAG와 SSIH는 이러한 심각한 위기를 깨달았으며, 주채권단인 스위스은행 등은 새로운 위기를 타개할 돌파구를 찾고자 하이에크 엔지니어링에 자문을 의뢰하게 되었다. 이때 현 스와치 그룹의 회장인 하이에크는 시계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현재의 스와치 그룹을 일구어 냈다. 스와치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하이에크 리포트

스위스의 쮜리히 대학에서 보험 통계학을 공부한 하이에크는 63년 하이에크 엔지니어링이라는 컨설팅회사를 설립하며, US스틸, 다우케미컬, 네슬레, BMW, 다임러 벤츠 등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컨설턴트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이후 스위스은행으로부터 자문의뢰를 받은 하이에크는 전세계 시장조사와 소비자 심리학 연구조사결과를 담은 ‘하이에크 리포트’를 냈으며 스위스 시계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하이에크는 보고서를 통해 값비싼 스위스産 시계보다는 일본이나 홍콩 제품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제품군을 저중고의 3단 케익구조로 나누어 전체 시계 매출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저가 제품에 대한 집중적인 공략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지만 비싼 인건비와 고급이미지 훼손을 우려하는 여론에 부딪히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가지고 있던 하이에크는 뜻을 같이하는 몇몇 투자자와 함께 일본에 매각될 처지에 있던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스와치의 신화를 이루어 내게 되었다.


스와치는 무엇이 다른가?

99년 8월 시계생산 그룹인 SMH가 SWATCH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지난 20여년간 계속해온 혁신과 새로움의 재발견을 통해 스와치를 세계 속의 기업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스와치 그룹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원동력이 된 스와치 브랜드 자산 구축을 위한 노력을 살펴보려고 한다. 스와치는 무엇이 다른가?


브랜드 전략을 바꾸다

포드는 근대적 경영방식에 혁신을 일으키며 저가격, 고임금의 T형 자동차 신화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전략으로 맞선 GM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이끄는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20년대 GM의 알프레드 슬론 회장은 다양한 소득계층의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해 저가의 Chevrolet부터 최고급 Cadillac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임으로써 변화하지 않는 포드에 일대 반격을 가했다. 하이에크는 GM의 이러한 브랜드 전략을 도입하여 고가의 시계에 치우쳐 있던 스와치 그룹의 시계 브랜드 폭을 넓히고 시장경쟁력 확보를 위해 저가 시장에도 뛰어들게 되었다.

하이에크는 그의 보고서를 통해 GM의 아이디어를 3단 케익구조로 재구성하여 위기에 처한 스와치 그룹의 재도약을 꾀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스위스 시계의 핵심역량으로 인식되던 최첨단 기술력만으로는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하이에크의 판단에 의해, 브랜드 자산의 구축을 기업의 핵심역량으로 재설정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기업활동 지배이념이 제품개념에서 마케팅개념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스와치 그룹은 시장세분화(market segmentation)를 통해 블랑팡, 오메가, 라도, 론진, 스와치 등 14개 브랜드를 제품과 가격대별로 구성하여 케익구조의 하단에는 ‘Swatch’를 비롯한 75달러 미만의 저가 브랜드를, 중간에는 ‘Tissot’을 포함한 4백 달러 정도의 중가 브랜드를, 상단에는 ‘Omega’를 포함한 1백만 달러에 이르는 고가브랜드를 위치시켰다. 그리고 ‘Blancpain’이라고 하는 초고가 브랜드를 케익 장식용 체리(cherry on top of the cake)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시장세분화를 마쳤다. 이러한 스와치 그룹의 브랜드 전략은 제품믹스의 넓이와 깊이를 확대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케익하단에 머물러 있던 고객들을 케익상단까지 순차적으로 유도하도록 하는 판매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Swatch’를 비롯한 저가 제품들의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통해 방화벽(firewall)을 구축함으로써 타사의 시장진입을 막고 고가 제품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시계는 패션이다

디지털 시계의 보급을 통해 사람들은 더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시계를 원했고 누구나 그런 시계를 한 두 개쯤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시계를 패션의 일부로 생각하지 않았다. 스와치는 그런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시계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하이에크는 대량 생산되는 저가 브랜드는 지속적인 수요창출을 위해 대중문화의 변화에 발맞춰야 한다고 여겼으며 이를 통해 저가 브랜드인 ‘Swatch’는 수많은 시계 디자이너들이 빠르게는 3개월에서 늦어도 6개월마다 새로운 디자인의 시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러한 속도는 시계를 단순히 시간을 보는 기계에서 날마다 갈아입어야 하는 패션의 일부로 만들어 내며 시계를 입는 문화를 만들어 냈다.

스와치는 시계 부품 수를 이전의 91개에서 51개로 최소화하고 시계의 케이스에 직접 부품을 넣어 조립하는 새로운 조립공정을 창안하여 원가를 대폭 절감함으로써 중저가 제품으로 옮겨갈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였다. 전체 브랜드의 시장세분화 이외에도 ‘Swatch’ 내에 다양한 상품군을 두고 각기 독특한 디자인과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여 고객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Swatch’만의 이미지를 구축하도록 하였으며, 이후 젊음, 스포티, 세련, 클래식의 4종류로 제품군을 재정의하고, 시계 디자인으로는 파격적인 색상들을 도입하여 ‘패션 시계’로서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스와치 디자인 연구소에서 상품을 디자인하는 등 예술성을 추구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85년 이후 백남준을 포함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디자인한 시계의 발매는 이러한 스와치 그룹의 노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혁신의 이름으로

스와치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들의 핵심역량을 브랜드 자산 구축으로 바꿔 스위스 시계 산업의 부흥을 주도하였다. 스위스의 첨단 기술력이 더 이상 장점이 될 수 없음을 간파한 하이에크 회장의 선견지명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개념의 패션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들, 그리고 창의적이고 유연한 조직구성원들은 혁신을 이루어냈다. 그들은 브랜드를 통해 새로움을 선보였으며 이를 통해 가치를 창출했다.

현대의 기업은 더 이상 제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것만으로는 기업활동을 유지할 수 없다. 스와치가 ‘새로움’과 ‘혁신’으로 가득 찬 이미지를 팔고 있듯이 그 이미지를 담고 있는 브랜드를 사고 파는 것이 이제는 우리의 경제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브랜드는 때로 전혀 가치 없어 보이는 것에도 매력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있으며 때로 낡아 보이는 것을 최신의 것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브랜드의 힘은 ‘새로움’이라는 끊임없는 혁신을 위한 노력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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