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영웅들

‘기억을 증진시키는 가장 좋은 약은 감탄하는 것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역사 속의 영웅들’과 ‘윌 듀런트’를 오래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특히, 그의 ‘힘차고 간결하고 사색적인 언어’와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의 핵심을 몇 마디 말로 찌르는 통찰력은 평생 기억할 것이다.

듀런트의 책을 훌륭하게 번역한 안인희는 ‘옮긴이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삶이란 대체 무엇인가, 우리 인간은 대체 얼마나 이상한 존재인가? 그토록 잔인하고 그토록 위대하고 그토록 허망하면서 또한 그토록 아름답다.” ‘역사 속의 영웅들’을 옮긴 그였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거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리라.

이 책에서 듀런트는 조금은 냉철하면서도 담담한 관찰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위대한 이들의 열매와 빛을 보여주고 때로는 감탄한다. 동시에 그들이 가졌던 어둠과 약점을 가볍게 벌려 놓는다. 그러면 어느새 우리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을 구경하는 아이가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호기심뿐이다.

‘역사 속의 영웅들’을 읽으면서 나는 두 가지 즐거움을 얻었다. 대가의 숨결과 통찰력에 감탄했다는 점이 첫째다. 잘 드러나는 것 말고 자칫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그의 통찰력을 하나만 볼까. 딱 한 줄이다.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을 경우 발명의 시대는 문제를 풀기보다는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낼 것[495]’, 이 한 줄이 의미하는 바는 심오하다. 쉬운 예로 싸움을 들어보자. 사람은 처음에는 주먹으로 싸웠다. 그러다 돌로 싸우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 칼과 총으로 싸우고, 이제는 핵미사일로 싸운다. 싸움의 이유는 주먹으로 싸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 것을 지키고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싸운다. 결국,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싸운다. 싸움의 본질은 같은 수준인데, 방식은 혁신적으로 발전했다. 결과는? 이제 세계대전이라도 나면 지구는 거의 멸망이다.

이 책에서 윌 듀런트가 전해주는 통찰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혁명과 변혁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부의 편중 문제’를 꼽고 있다는 점이다. 부의 집중은 불안을 야기하고 악화되면 혁명을 부른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기원전 133년 아테네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솔론은 평화적으로 개혁을 완수함으로써 사회를 지켜내고 한 높이 더 도약시켰다. 하지만 듀란트는 이런 평화적 개혁은 드문 일이고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솔론의 예와는 반대되는 경우가 책의 곳곳에 등장한다. 한쪽으로 부가 쏠리는 것을 처음부터 막고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서는 반드시 조절을 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느 정도 수준’을 알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부의 집중이 가속화될수록 조절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면 부와 권력이 같이 가고, 부를 소유한 사람과 집단이 힘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칼을 댈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이유로 조절의 시기를 놓치고 혁명이 일어나면 사회는 피와 투쟁으로 얼룩지게 된다. 투쟁에서 기득권자들이 지게 되면 그들은 가장 먼저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 더 많이 갖고 있던 사람일수록 잃는 것이 더 많다. 윌 듀런트는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문제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 이미 일어났었고 그 결과와 해결의 실마리도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는 이미 오래된 과거인 셈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듀란트의 책에서 얻은 두 번째 즐거움은 매력적인 시대와 조직 그리고 사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솔론,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혁명, 로마제국의 부흥을 이끈 ‘철학자 왕들’, 아테네 ‘황금 시대’의 문학, 프란시스 베이컨, 예수회 등등. 이 책은 보물이 아니다. 대신에 보물찾기를 도와주는 지도다. 그리고 지도로써 이 책은 보물이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지도다. 나침반을 가진 지도다. 헤맬 수 있지만 방황은 하지 않게 해준다. 또한 이 책은 살아 있는 지도다. 좋은 곳이 어디이고 그곳에 가면서 만나게 될 경유지와 아름다운 절경과 풍치를 넌지시 알려준다. 또한 여행 중에 꼭 만나야할 매력적인 사람이 누구인지도 소개해준다. 하지만 정밀지도는 아니어서 전부 알려주지는 않는다. 너무 자세한 지도는 여행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점을 윌 듀런트는 간파한 듯하다. 현실적으로, 한 권으로 그렇게 자세히 알려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우리를 역사의 유혹으로 이끌고 역사로 화장한 철학은 역사의 지루함을 달래준다.


◎ 저자의 목소리

[9] 역사는 예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다.

[10] 내게 있어서 역사란 철학의 한 부분이다. 철학은 광범위한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삶과 현실의 광범위한 전망을-당신의 태도를 현실이나 삶의 특정한 부분을 향해 이끌어가는 광범위한 전망 말이다. … 당신은 적어도 두 가지 방식으로 광범위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과학을 통해서이다. 그것은 외계 현실의 모든 양상을 물들이고 있는 다양한 과학을 공부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광범위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공간 속의 사물보다는 오히려 시간 속의 사건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 역사는 시간 속의 사건들을 탐구함으로써 철학적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결론적으로 나는 자신이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85] 철학은 전체의 빛 속에서 부분을 탐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큰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이 그 최초의 교훈이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라는 것은 아마도 건강, 아름다움, 진실, 지혜, 도덕성, 행복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가 될 것이다.

[144] 역사는 신문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날짜는 바뀌어도 사건은 언제나 똑같다.

[488] 경험의 진짜 방법은 우선 촛불을 켜는 것이다(가설). 이어서 촛불을 수단으로 삼아 길을 비추고, 비로소 적절한 경험을 시작해서…… 그것으로부터 공리를 이끌어낸다(‘첫번째 결실’, 잠정적 결론). 그리고 이렇게 확정된 공리로부터 다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실험 자체가 판정을 내려야 한다. –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 귀납법에 베이컨의 설명이다. 그는 과학의 철학자였다. 과학과 철학에 그의 방법론과 사상은 큰 영향을 미쳤다. 귀납법은 현대 과학의 방법이 되었고, 경험의 강조는 홉스, 로크, 존 스튜어트 밀에게 경험론 철학의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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