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영의 성공과 실패

배움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열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낯선 나라의 언어인 영어를 먼저 가르치고, 조금 더 큰 후에는 뛰어 놀 시간도 없이 하루 해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도록 강요한다. 사춘기 시절은 더욱 잔혹하다. 오직 더 좋은 학교, 학과를 위해 수학 공식과 영문법이라는 지식을 머리 속에 구겨 넣도록 강요 받을 뿐 그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민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제 낭만적인 대학 시절은 없다. 입학식과 함께 시작된 취업 전쟁은 새벽 도서관을 어수선한 시장 바닥보다 더 북적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이렇게 우리는 남들보다 더 영리해지기 위한 전쟁에 온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세기와 세대를 넘어 우리는 확실히 이전보다 똑똑해지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어느 누구도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학창 생활이 끝나고 사회에 첫 발을 내 디딘 이후 희망에 가득 찼던 미래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고 자신의 삶이 낡고 누추해지고 있다는 절망을 느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채웠던 지식이 쓸모 없다는 사실은 그런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어째서 우리는 이미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을 만큼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할까?

‘일요일은 엄마에게 복수할 시간이 많아서 좋다’는 학업에 지친 어린 아이의 섬뜩한 한마디가 우리에게 그 해답을 준다. 행복은 건강함에서 온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영리한 사람을 만드는 데에만 골몰해 왔을 뿐 건강한 사람을 만드는 데에는 인색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편이 옳다. 건강하지 못하고 영리한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교활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똑똑해 질 수 있다. 건강함은 우리 삶을 역동적으로 그리고 희망에 가득 차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기업도 다름이 없다. 지금껏 20세기를 관통해 온 경영의 화두는 ‘조직의 영리함’이었다. 우리는 조직을 좀더 똑똑하게 만드는 것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어 왔다. 효과성은 무시한 체 오로지 효율의 미덕에만 매달려온 우리에겐 끊임없는 대안이 요구될 뿐이었다. 사람들은 지쳐갔고 경쟁은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 그 대안의 세기의 끝 자락에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이 제시된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지식경영에 접근해 갈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보아 왔던 이론적 정의들의 정적인 간결함은 뒤로 하고 다소 장황하지만 동적이며 현실적인 면들을 살펴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식경영’이라는 어휘가 주는 역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식경영은 역설적이다

지식경영은 역설적이다. 지식경영은 그 어휘에서 ‘조직의 영리함을 추구하는 극단’에 선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바로 지식경영은 ‘조직의 건강함’을 추구하고 있고 그래서 역설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의 창출과 공유는 조직이 건강하지 못하면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모든 이론적 함의는 그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리석게도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간과한다. 더 쉽게 밖으로 드러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영리한 아이를 그리고 영리한 조직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조직이 지식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행복을 얻고자 한다면 건강한 정신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리하기만 한 아이는 어머니에게 복수할 기회만 노리는 괴물일 뿐이고, 영리한 조직은 나태함에 빠져 금방 무너질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식경영을 실천하고자 하는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 또한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식경영을 단순히 지식을 모으고 공유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또 다른 한계에 다다르게 될 뿐이다. 그것이 갖는 근본적인 전제와 의미를 바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경영의 핵심은 ‘건강한 조직 만들기’에 있다. 건강한 조직은 스스로 영리해 질 뿐 아니라 어떠한 외부적 충격에도 잘 견뎌낸다. 또한 ‘영리함’과 ‘건강함’은 상생의 순환고리를 만들어 변치 않는 경쟁력을 창출하게 된다. 더불어 ‘건강함’은 조직 구성원들이 지식을 창출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어 준다. 이제 몇몇 실패 사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영리한 조직을 만들기에 골몰했을 뿐 건강한 조직 만들기에는 실패했다. 그 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던 조직 구성원들은 모두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나 그들이 이룬 조직은 어딘지 모르게 자주 삐걱거리고 영민함을 발휘하지 못했다.


불신

99년 초 약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지식경영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세미나에는 컨설팅 업계의 관계자와 SI 업체의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참 말들이 오간 뒤 세미나의 관심은 온통 지식경영이 성공할 것인가 하는 데에 모아졌다. 과연 조직 구성원들이 지식 나누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인가 하는 주제로 설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토론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지식경영 컨설팅과 새로 개발된 솔루션으로 주목을 받던 회사의 컨설턴트가 말문을 뗐다.

“아무래도 힘들겠죠. 저희 회사가 몇 년 앞을 바라보고 지식경영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지만 현재로서는 비관적입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이 지식을 공유할 마음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이 쓰레기라도 올리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마저도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핵심 지식은 누구에게도 알려 줄 수가 없지요. 결과는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가 가진 노하우를 공유하게 되면 회사에서는 분명히 저를 자를 텐데요.”

시간이 흐른 후 그 회사는 많은 솔루션을 팔았고,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자기 자신은 정작 지식을 공유하는데 실패했다. 잘 설계되고 구축된 솔루션이 뛰어난 컨설턴트와 엔지니어들의 쓰레기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대화의 단절

90년 대 후반 지식경영의 열풍과 함께 한 대기업에서도 솔루션 도입과 지식경영을 실천하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물론 지식경영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기업의 앞날을 걱정하는 CEO였고 결정 또한 그가 주도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직원들은 그 과정을 아무것도 모른체 사내 인트라넷의 공지와 사내방송을 통해 소식을 전달 받았다. 다들 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새로 바뀐 지식관리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것이 귀찮을 뿐이었다.

직원들은 매일 지식을 등록하도록 재촉 받기 시작했고 잡다한 기사며 읽을 거리, 업무 매뉴얼들이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과 운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회의 시간에도 그저 준비된 자료를 설명하고 할 일을 전달 받을 뿐이었다. 애초 지식경영 운동을 전달 받을 때와 같이 이 회사에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일방적이었다. 그들은 업무 후 술을 마시며 나누는 한담 이외에는 대화를 나누기를 꺼리고 있었다. 회사의 조직 문화가 그러했다.

“어떻게 말을 꺼냅니까? 웃기만 해도 쓸데없이 농담이나 하고 있다고 욕먹는 판에… 그저 하는 얘기나 듣고 따라 하면 중간이나 가지요.”

얼마 후 회사는 불편하기만 한 지식관리시스템을 없애고 예전 시스템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아니, 일이 어떻게 돌아 갔는지 전혀 모르고 있던 CEO에 의해 성공적인 지식경영을 위한 또 다른 솔루션을 새로 구축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관료화

몇 해전 공기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새로운 사장의 취임과 함께 지식경영 추진을 위한 경영혁신 팀이 만들어졌다. 외부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본사로 발령을 받아 왔고, 사장에게 직접 보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어지간한 일에는 미동조차 않던 거대한 공룡과 같은 회사에 작지만 의미 있는 바람이 불었고, 특히 담당부서 사람들은 CEO의 전폭적인 지원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하지만 희망에 가득 찬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식경영을 위한 효과적인 조직구조와 당시 조직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을 담은 첫 번째 보고서가 사장에게 전달되었을 즈음 임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고 느낀 몇몇 임원들은 격분한 나머지 담당부서를 찾아 가 서류를 집어 던지며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다. 결국 회사 임원들은 혁신 팀의 모든 업무를 보고 받기로 하는 선에서 담당부서의 활동을 인정하기로 했고 사장의 눈과 귀를 멀게 만들었다. 결국 CEO는 회사를 변화 시킬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임원들로 인해 알맹이 없는 보고만을 받게 됐고, 담당부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됐다.

얼마 후 혁신 팀의 직원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다.

“너무 참을 수가 없더군요. 정말 큰 맘 먹고 보고서를 다시 만들어 사장실로 직행했습니다. 그리고 보고서를 드리고 나왔지요.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됩니다만 후회는 없습니다.”

결국 그 회사의 새로운 조직에 대한 의지와 희망은 흐지부지 사라지게 됐고, 그 뒤로도 끊임 없는 분규와 충돌로 몸살을 앓게 됐다.


조직 그리고 사람

지식경영은 이미 알고 있듯이 지식을 창출하고 그것을 공유하는데 있다. 그리고 그 순환의 고리를 영속적으로 지속시키는데 있다. 만약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 지식경영은 창조적 순환의 과정이다. 그 순환의 과정에 결함이 있다면 그것은 지식경영이 아닌 이전의 대안들과 다름이 없는 개념이 되고 만다. 앞에서 본 실패한 사례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조직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가 지식경영의 순행적인 흐름에 치명적인 결점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건강한 조직’은 지식경영을 위한 근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인 것이다. 지식경영의 이론적 정의에는 그러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지만 정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론적 정의는 사고의 흐름을 충실하게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반면 우리가 본 사례들은 근원적인 문제를 무시해 지식경영이 실패할 수 있는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지식경영의 성공에 대한 해답을 함께 보여 주고 있다.

사례들이 모두 기업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문화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또한 쉽게 알 수 있다. 90년대가 대안의 시대였다면 사람의 시대이기도 하다. 직무 중심의 인사관을 가지고 있던 미국과 유럽이 한국과 일본의 인사관에 주목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지식경영에 실패한 사례들이 모두 이러한 흐름을 포착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우리가 그들의 영리함에 탄복해 있을 때 그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장점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한 ‘건강한 조직’ 만들기에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식경영의 성공과 실패, 그 귀착점

지식경영의 성공은 전적으로 기업이 어떤 조직문화를 가졌느냐에 달려 있다. 성공한 기업이라면 건강한 조직을 그리고 건전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패했다면 기업의 조직문화를 점검하고 과감히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마치 아이들을 영리하기만 하고 버릇없이 키우기 보다는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겸손하고 사려 깊도록 키우는 것과 같다. 이러한 비유는 조직이 형성되는 초기라면 비교적 건강하게 발전시키기 쉽지만 이미 다 자라 성인이 된 조직이라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쩌면 그 어려움이 똑똑한 조직을 만드는 것에만 몰두하도록 하는지 모르겠다.

영리한 조직을 만들 것인가 건강한 조직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결정은 전적으로 회사 경영자의 손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 해답은 명확하다. 불확실성의 시대가 가져 올 거대한 힘과 불안함을 모두 떨쳐 낼 수 있는 것은 건강한 조직 뿐이다. 이미 늦었다고 후회하기에는 우리의 기업 역사가 일천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가장 똑똑하지만 건강하지는 못했던, 우리가 보아 온 실패 사례들의 문제점을 고루 갖추고 있던 GE가 세계 최고의 지식기업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도 결코 늦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지식경영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기술적이고 명확한 단서들을 원했을지 모른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수 많은 사례들에서 공통적이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고 모호한 개념이긴 하지만 이제 지식경영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알 수 있게 됐다. 그것은 지식경영의 모든 성공과 실패가 ‘건강한 조직과 조직 문화’라는 하나의 사실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지식경영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자 대안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경영에서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서 영리함만을 추구하던 과거를 버리고 건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에서 직원들이 물고기를 하늘 높이 던지는 행위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처럼 보인다. ‘겅호’에서 모든 직원들이 겅호를 크게 외치는 것은 마치 사교 집단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매우 유치하고 비생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그런 행동을 통해 스스로가 만든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건강해 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는데 거리낌이 없고,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영리해져 가는 것이다. 영리하기만 한 조직이라면 결코 물고기를 던질 생각도 겅호를 외칠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마음 속 깊은 내부의 자물쇠로 꼭꼭 채워두려 하기 때문이다.

출처 : 주식회사 녹십자 사보 2002년 5,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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