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파는 기업, 월트 디즈니

올 한 해 동안 엽기토끼라 불리는 ‘마시마로’ 인형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길을 지나다 보면 노점상들의 가판대는 큰 머리에 졸린 듯한 눈의 흰 토끼들로 넘쳐 났고, 젊은이들의 가방과 핸드폰 줄에는 어김없이 마시마로가 매달려 있었다. 가히 신드롬이라 불릴 만한 마시마로 열풍은 개방형 미디어라 할 수 있는 인터넷으로부터 시작됐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이라 불리는 작은 동영상 파일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그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황당한 행동마저 서슴지 않던 이 작은 캐릭터가 그렇게 큰 영향과 힘을 발휘할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마시마로를 찾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과 같은 열광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너무 많은 곳에서 지겹도록 많은 인형을 봤지 않은가. 이제는 그 거칠 것 없어 보이던 마시마로가 모든 힘을 한꺼번에 쏟아 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돈 욕심이 지나쳤던 것일까? 사실 거의 절반 이상의 마시마로가 불법 복제품이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어쩌면 마시마로라는 기발한 캐릭터를 잃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우리는,

열악한 캐릭터 디자인 산업.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지만 정작 캐릭터 산업이 갖는 가치와 힘을 우리는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들어 체계적인 경영 방식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단순히 캐릭터를 잘 개발하고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그 상품가치를 높이고 유지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은 아닐까? 더욱 중요한 것은 캐릭터라는 상품은 TV를 생산하거나 햄버거를 파는 것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는 점이다. 캐릭터 산업은 관련 산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크고, 즐거움을 전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문화의 일부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아직까지 그 미래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마시마로의 열풍을 사그라지게 한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경영방식을 갖춘 문화 기업을 갖지 못한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시마로라는 뛰어난 캐릭터가 있지만 ‘지속성을 갖는’ 문화 상품으로 발전해 가는 데는 우리의 역량이 버거워 보이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마시마로 캐릭터의 시장 규모가 1,000억 원대를 넘어섰다고 섣불리 기뻐하기보다는 현재 우리에게 부족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찾아 보고 고쳐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70년이 넘도록 사랑받고 있는 미키 마우스와 우리 나라에 전용 상점까지 갖고 있는 헬로 키티가 부러울 뿐이다.


미래 산업의 키워드, 문화

입고, 먹고, 자는 문제가 중요했던 과거에는 캐릭터,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문화 산업은 사치에 불과했다. 마시마로 인형 한 개를 살 돈으로 하루를 배불리 지낼 수 있다면 누가 인형을 사려 하겠는가? 생존을 위한 선택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허락하지 않는다. 철학자, 배고픈 예술가들은 예외로 하더라도. 하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우리는 가방과 핸드폰을 마시마로 인형으로 치장하고 500만 명이 훌쩍 넘게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를 본다. 나아가 그 영화 속에 나왔던 인물들을 주제로 한 캐릭터 상품들을 구입하고, 주제가가 담긴 CD를 즐기고 있다.

스필버그의 영화 ‘주라기 공원’이 벌어들인 돈과 우리가 자동차 몇 대를 수출해야 그 가치가 같아지는지를 비교하는 것은 이제 진부한 논쟁이다. 기존 산업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여력이 많지 않다. 수많은 경쟁자와 수렴하는 기술, 무너지고 있는 국경.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에게 모든 것이 불리할 따름이다. 하지만 문화 산업에서는 다르다. 여전히 큰 자본력과 높은 기술력은 중요한 역량이라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문화는 다양성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창의성을 그 원동력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컴퓨터 한 대로 혼자서 작업한 마시마로 캐릭터가 불과 1년 사이에 1,200억 원이 넘는 시장을 형성한 점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러한 창의적인 노력에 날개를 달아 주는 일뿐이다.


꿈과 희망을 파는 기업

누가 날개를 달아 주어야 할까? 아니, 그러한 날개가 되어 온 기업을 찾는 것이 더 빠를 듯하다.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우리에게 지난 수십 년간 즐거움을 선사한 기업들을 찾아본다면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업적을 보여 준 기업이 하나 있다. 몇 가지 힌트가 있다. ABC, ESPN, FOX.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좀 더 쉬운 힌트가 필요하다면 다음의 영화 제목에서 공통점을 찾아도 될 것이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굿모닝 베트남, 프리티 우먼, 알라딘, 진주만, 최근의 몬스터 주식회사까지. 정답은 ‘디즈니(Disney)’이다. 미키와 미니 마우스, 도널드 덕, 구피, 곰돌이 푸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가장 두터운 고객과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들을 만든 기업 월트 디즈니이다. 월트 디즈니는 누구나한 번쯤 꿈꾸는 디즈니랜드의 주인이기도 하다.

꿈을 파는 기업. 월트 디즈니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것이다. 디즈니는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영화와 TV를 통해 세상에 알렸다. 그뿐 아니라 디즈니랜드에서는 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월트 디즈니를 단순히 만화와 영화를 만드는 기업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는 디즈니가 만화와 영화를 생산하는 데 그치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키 마우스가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의 손끝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변함없는 인기를 위하여

1928년 단편 만화영화 ‘증기선 윌리(Streamboat Willie)’를 통해 세상에 소개된 미키 마우스는 곧 그 영역을 TV에까지 넓히게 된다. 큰 인기를 누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를 시작으로 도널드 덕, 구피와 같은 대스타들을 만들어 냈고 오늘날까지 디즈니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이들 캐릭터가 단발의 만화영화 혹은 TV 연재물의 주인공으로만 남았다면 오늘날까지 그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잠깐의 영광 뒤에 쓸쓸히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디즈니는 자신의 스타들을 사람들에게서 쉽게 잊혀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잊혀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우리들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수십 년 전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보던 어머니가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그 딸이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백설공주 영화를 만들어 내는 디즈니의 전략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코카콜라가 자신의 브랜드를 유지하며 단 하나의 상품으로 막대한 이익을 향유하듯 디즈니도 캐릭터라는 상품의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미키 마우스가 등장하는 만화가 상영되고 있으며 도널드 덕과 푸가 일요일 아침마다 어린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변함없이 친숙하지만 그 만화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은 언제나 새로워지고 있다. 70년 전 어린이들의 동심과 지금 어린이들의 그것은 분명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새롭지 않다면 그만큼 주인공에 대한 어린이들의 사랑은 식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장벽을 넘어

이렇게 시대를 넘어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디즈니의 주인공들은 공교롭게도 쥐, 곰, 오리에 이르기까지 동물인 경우가 많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지만, 아마도 디즈니의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가 젊은 시절부터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많이 그렸던 영향이 큰 듯하다. 무엇보다 동물이 사람보다는 더욱 친숙하게 다가선다는 점을 잘 알았던 것 같다. 이러한 디즈니 만화의 특성은 이후 문화를 초월하여 디즈니를 사랑받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됐다.

보통의 경우 인종과 문화를 하나로 아우르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한다. 자칫 그러한 시도가 어설픈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무국적의 낯설기만 한 만화 주인공들은 오히려 문화적 반감을 살뿐이다. 디즈니의 동물 주인공들은 그런 점에서 문화라는 장벽을 허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다.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의 어린이들이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즐거워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근 디즈니는 또 다른 시도를 보여 주고 있다. ‘뮬란’에서는 동양적인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중국 여성이 주인공으로, ‘알라딘’에서는 구리빛 피부가 인상적인 아랍인이 주인공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문화를 넘어서 이제는 세계 곳곳의 문화를 디즈니로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이슬람문화권에서조차 디즈니 만화영화가 암시장에서 고가에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디즈니의 문화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의 성과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시너지 효과를 높이며

이처럼 시대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는 범세계적인 캐릭터와 영화를 만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키 마우스와 곰돌이 푸를 만드는 일은 창의적인 작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따라서 그 성공이 디즈니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역량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가능성을 확인했다. 우리의 마시마로가 디즈니의 그것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독창성과 상품성을 지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에게는 창의적이고 솜씨 뛰어난 인재들이 있다. 단 한가지 문제라면 우리에게는 ‘월트 디즈니’와 같은 거대한 날개가 없다는 점이다.

월트 디즈니의 만화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영화의 주인공일 뿐 아니라 TV 시리즈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또한 각종 캐릭터 상품들을 장식하고 있으며 디즈니랜드라는 거대한 테마 파크에 자신들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도널드 덕은 디즈니의 아이스 하키 팀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이렇듯 월트 디즈니의 주인공들은 동시에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다재 다능한 탤런트인 것이다. 바로 그러한 능력, 즉 날개가 되어 주는 역할을 디즈니가 하고 있는 것이다.

미키 마우스와 알라딘이라는 영화가 벌어 주는 돈 역시 크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 선다.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를 비롯한 주인공들을 라이센스해서 매년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그뿐 아니라 알라딘의 비디오 판매수익은 애니메이션 센터를 건립하는 데 쓰일 만큼 거대하다. 또한 각종 캐릭터와 디즈니가 만들어 낸 영화를 테마파크로 그대로 옮겨 끌어 모으는 관객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수익성 떨어지는 프로 스포츠인 아이스 하키에 도널드 덕을 활용해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탈바꿈시키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모범 사례가 된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디즈니, 문화 기업의 출현을 기대하며

이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았다. 캐릭터가 갖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고 높이기 위한 노력은 누구 혼자의 몫이 아니며, 문화를 넘어서는 범세계적인 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 또한 그렇다. 다양한 관련 분야의 동시적인 발전이 더 큰 성과를 가져온다는 시너지 효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바로 이러한 노력들이 가져올 이점을 누리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경영능력을 갖춘 문화 기업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문화 기업의 상징으로 살펴 본 월트 디즈니가 언제나 성공을 거듭한 것은 아니다. 과거 80년대에는 투자부적격 기업으로 낙인 찍혀 지진아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적대적인 기업 인수의 목표물이 되기도 했으며 관료적인 기업 조직은 비난의 대상이 됐다. 디즈니가 만들어 내는 영화와 만화가 미국적 가치를 강요한다는 비판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디즈니는 여전히 꿈과 희망을 파는 기업으로 남아 있다. 문화라는 이름이 주는 특별한 혜택인 것이다.

디즈니가 무엇을 파는가를 묻는다면 대답은 하나뿐이다. ‘문화’ 바로 그것이다. 마시마로가 독특한 캐릭터로만 생산되고 팔린다면 그 미래는 불안할 뿐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창출해 나가지 못한다면 그저 재미있는 인형이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 디즈니가 미키 마우스에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정서와 감정을 담아 다양한 방법과 전략으로 문화를 팔았다면 우리에게도 그러한 노력이 필요하다. 거대한 자본과 기술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문화는 다양성과 상대성을 존중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디즈니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그들의 이름을 알렸듯이 우리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있다. 이제 우리에게도 디즈니와 같은 날개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

출처: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사보 <세계의 기업> 2002년 1월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