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법칙

서점에서 사람이 가장 붐비는 곳은 잘 팔리는 책을 모아 두는 베스트셀러 코너이다. 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인가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기가 곤란하다. 많이 팔린다는 것은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겠지만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노작(勞作)이라는 사실은 보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을 집어 들고 한참을 고민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작년에 출간된 이후 꾸준한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 수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가능하다면 숨겨진 보물을 찾는 재미를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베스트셀러에 대한 미묘한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책을 집어 들게 한 용기를 준 것은 ‘협상’이라는 단어가 주는 호기심이었다. 한때 협상과 관련된 이론을 찾아 헤맸던 기억이 한 몫을 했다.

당시 관련 자료를 찾으며 알게 된 사실은 우리 나라에는 협상에 관한 사례나 이론체계가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미국을 포함한 서구는 그 이론의 토대가 단단했다. 주목 받는 학문으로 자리를 잡은 지 이미 오래였다. 우리가 국제 사회에서 혹은 기업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노사관계에서 큰 시련을 겪으며 많은 것을 잃고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나는 책 표지를 넘기며 큰 기대를 하게 됐다. 어쩌면 세계적인 협상가라고 하는 허브 코헨이 그 문제들을 해결할 열쇠를 내게 쥐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지만 ‘협상의 법칙’은 생각만큼 거창한 책이 아니었다. 여기서 거창하지 않다는 것이 기대 이하라는 뜻이 아니다. 책은 이론을 나열한 연구서가 아닌 저자의 경험 그 자체였고 바로 이점이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땀 흘리며 수십 년을 쌓은 경험만큼 소중한 자산은 없지 않은가? 저자는 자신이 협상가로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평범한 일상과 잘 버무려 놓고 있었고 책을 읽는 편안함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세상의 8할은 협상’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허튼 소리가 아닌 듯하다. 일상 속에서 물건 값을 깎거나 좋은 조건에 물건을 사는 것, 그리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원활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또한 협상이라는 사실을 책을 읽는 동안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를 누군가와 협상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협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남으로부터 무엇을 빼앗아 오는 것인가? 아니면,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더 많은 상대방의 양보를 받아오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은 협상을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이었다. 협상은 상대방을 위협해 무엇인가를 강탈해 오는 것이 아닌 서로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는 합의점을 찾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화를 이루는 것보다 대립하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저자가 전하려고 하는 또 다른, 하지만 핵심적인 협상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관계’가 그것이다. 협상은 결코 비인격적이고 도식화된 절차를 밟아나가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만들어 가는 지극히 인간적인 과정이다. 책을 읽으며 협상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과 전략만을 보았다면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협상의 법칙’에는 협상의 중요한 요소인 힘, 시간,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기술들과 전략들이 소개되어 있다. 내용은 어렵지 않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서부터 저자가 옛 소련과의 협상에서 얻은 경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브 코헨의 경험으로부터 협상 상대방을 쉽게 다룰 수 있는 기술들만을 배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협상인지를 오래도록 생각하고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실마리는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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