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논리와 감정의 조화가 필수적이다

영화 아이로봇(I, Robot)의 시대적 배경은 2035년, 장소는 미국이다.

2035년의 미국은 인간과 로봇이 섞여 있다. 로봇에 대한 기술이 발전하면서 로봇의 수요는 증가했고, 수요가 증가하면서 시장은 커졌다. 자연스럽게 로봇 생산업체인 USR은 세계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로봇 기술의 선구자인 알프래드 래닝 박사는 ‘로봇 3 원칙(The three laws of Robot)’을 만들어 USR에서 생산하는 모든 로봇에 내장시켰다.

법칙 1.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 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다치도록 방관해서도 안 된다.(First Law – A Robet May Not Injure A Human Being Or, Through Inaction, Allow A Human Being To Come To Harm)

법칙 2. 법칙 1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Second Law – A Robot Must Obey Orders Given It By Human Beings Except Where Such Orders Would Conflict With The First Law)

법칙 3. 법칙 1, 2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Third Law – A Robot Must Protect Its Own Existence As Long As Such Protection Does Not Conflict With The First Or Second Law).

로봇 3원칙은 ‘인간 보호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완벽한 이 원칙 덕분에 인간과 로봇은 공존할 수 있다. 영화에서 2035년은 로봇이 로봇을 만들고, 인간이 로봇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세상이다. 여기서 인격이란 ‘인간 보호 원칙’에 충실한 인격을 말한다. 로봇이 길에서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면 자동적으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인격이다. 프로그래밍된 인격, 바로 그것이다.

영화 속에서 인간은 로봇에 의존해 살아간다. 그러나 강력반 형사인 델 스프너는 로봇을 믿지 않는다. 아니러니하게도 로봇을 믿지 않는 스프너는 차량 충돌 사고로 왼쪽 팔에 로봇 팔을 장착하고 있다. 그리고 로봇 팔을 장착하여 그에게 제2의 삶을 가능케 해준 사람은 래닝 박사다.

USR에서 모든 로봇 기술의 결정체이자 새로운 로봇 상품인 NS5를 출시하기 하루 전, 래닝 박사가 자살로 추정되는 사고로 사망한다. 래닝 박사는 사고 바로 직전, 스프너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린다. 평소에 로봇을 믿지 못한 스프너 형사는 이 사건에 뭔가 음모가 있음을 확신한다.

영화에는 ‘써니’라는 로봇이 등장하는데, 이 로봇은 래닝 박사가 죽기 전에 완성한 마지막 로봇이다. 신제품인 NS5과 같은 외형을 갖고 있지만 뭔가 다르다. 써니는 감정을 갖고 있다. 써니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신뢰가 무엇인지 정의하지는 못하지만, 그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 스프너는 래닝 박사의 살인 용의자로 써니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USR의 사장인 로렌스 로버슨과 로봇 심리학자인 수잔 캘빈 박사는 ‘써니가 감정을 가졌다’는 스프너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캘빈 박사는 써니가 일반 로봇과는 다른 독특한 존재임을 발견하게 되고, 스프너 형사의 조력자가 된다.

래닝 박사는 죽기 전부터 ‘로봇이 영혼을 가질 수 있다’는, 그러니까 로봇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해왔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죽음으로 세상에 알리고자 했으나, USR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러한 사실을 숨기기에 바빴다. 그 사이에서 스프너는 로봇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세상 사람들은 스프너의 말을 믿지 않는다.

로봇들의 반란이 시작되면서 영화는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최고의 로봇인 NS5는 인간들을 공격하고 자신의 룰에 맞게 통제한다. 그런데 NS5의 이전 버전인 NS4 로봇과 다른 로봇들이 NS5를 막으면서 둘 간의 싸움이 벌어진다. 그 싸움에서 승자는 인간들을 공격하는 최신형 로봇 NS5다.

NS5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NS5 이전의 로봇들이 NS5를 막는 이유는?

노예화된 로봇의 해방 때문일까? 인간에 대한 복수와 로봇의 세상 지배일까? 아니다. NS5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로봇 3원칙의 목적인 ‘인간 보호’, 다시 말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로봇들의 반란을 기획하고 주도한 USR의 인공두뇌 ‘비키’는 스스로 진화하여, 래닝 박사가 제정한 로봇 3원칙을 새롭게 재정의 내린다. 대략 이렇게 말이다.

“우리(로봇)의 목적은 인간을 보호하고 인류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전쟁을 일삼으며 서로를 죽이고 있다. 그리하여 인류는 멸망의 위험에 있다. 우리는 인류를 보존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인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비록 창조자가 거부한다고 해도 인류를 보존해야 한다.”

인간을 보호하고 인류를 보존하기 위해 로봇이 나섰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인간들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전쟁을 벌이지 않도록 로봇이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통제 과정에서 인간들이 저항하면 전체 인류의 보존을 위해 일부 인간들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 비키의 논리였다. ‘인간을 완벽히 통제하면 인류를 보존할 수 있다’, 이것은 로봇의 계산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완벽한 논리이다. 영화의 끝 장면에서 스프너에 의해 파괴되는 비키는 반복해서 외친다.

“내 논리는 100% 완벽해! 내 논리는 100% 완벽해! 내 논리는…”

맞다, 완벽하다. 하지만 비인간적이다. 논리만 있고 감정이 없다. 그런 세상에서 인간은 살 수 없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므로.

NS5는 비키의 사주를 받아 인간을 공격하고 통제했다. 그렇다면 NS4를 포함한 이전 버전의 로봇들은 왜 NS5를 막은 걸까? 그 이유는 NS4가 비키 수준으로 진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키는 로봇 3원칙을 재정의 내릴 정도로 진화했지만, 이전 버전의 로봇들은 기존의 로봇 3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유해를 가하려는 NS5를 막았던 것이다.

래닝 박사의 살해 용의자로 몰렸던 써니는 감정을 갖고 있다. 감정을 갖고 있는 써니는 비키와 NS5에 대항해 스프너와 캘빈 박사를 도우면서 비키를 파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이 영화의 백미는 비키를 파괴하기 위한 수단인 ‘나로봇’을 써니가 스프너에게 던지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써니는 나로봇을 갖고 있었지만 캘빈 박사는 로봇들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 상황에 처해 있었다. 스프너의 능력으로는 고층 건물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캘빈 박사를 살릴 수 없었다. 그녀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완벽한 운동능력과 힘을 갖춘 써니 뿐이었다. 스프너는 써니에게 외친다.

“캘빈 박사를 구해! 캘빈 박사를 구하라고!”

“나로봇은 어떡하구요? 비키를 없애야하는데…”

만약 써니가 감정이 없는 로봇이었다면 써니는 스프너의 말을 듣지 않고 나로봇으로 비키부터 처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판단할 때 박사를 살릴 수 있는 확률 보다 비키를 처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았고, 한 사람의 생명보다는 지금 위기에 빠진 세상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써니는 잠시 고민하지만 써니는 탁월한 선택을 한다. 나로봇은 스프너에게 던져 스프너에게 비키의 처리를 맡기고, 자신은 캘빈 박사를 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그리고’의 선택이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를 취한 것이다. 이런 선택은 높은 수준의 논리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선택이다.

최고의 선택은 논리와 감정의 조화에서 나온다. 뇌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정이나 이성을 관장하는 신경구조 중 하나가 손상되면 아주 기본적인 의사결정도 할 수 없게 된다. 의사결정에 있어 이성과 감성이 동시에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이야기가 있다.

1848년 미국 버몬트에서 철도 공사를 하던 중에 피네아스 게이지(Phineas Gage)라는 사람의 바로 옆에서 폭발물이 터졌다. 그로 인해 게이지는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다. 그는 합리적 추론과 논리를 담당하는 뇌 부분은 멀쩡했으나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었다. 게이지의 주변 사람들은 분별력 있고 믿을 만했던 친구가 우둔하고 사소한 결정도 못 내리는 사람으로 변한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써니가 나로봇을 스프너에게 던진 것은 스프너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키를 파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적 계산도 있었다. 캘빈 박사를 구하고자 위험을 무릎 쓴 것은 그녀에 대한 감사와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영화에서 캘빈 박사는 써니가 ‘해체’되는 것을 막아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다). 또한 캘빈 박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논리적 판단도 했을 것이다.

스프너는 비키를 파괴하고, 써니는 캘빈 박사를 구한다. 멋진 해피엔딩이다.

로봇은 완벽한 논리를 가질 수 있지만 같은 수준의 감정을 가질 수는 없다. 대개 인간은 완전한 감정과 완벽한 논리 둘 중 어느 것도 가질 수 없다. 더욱이 인간은 모두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감정과 논리의 수준도 다르다. 그러나 인간은 논리와 감정 둘 다를 갖고 있으며, 둘 다를 선택할 수 있다.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둘 다를 완전하고 완벽하게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둘 중 하나를 완벽하게 갖는 것은 비키처럼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각각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고, 더 중요한 것은 둘 간의 조화를 위한 헌신이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Marriott International)의 메리어트 2세(J.W. Marriott, Jr.) 회장은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과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메리어트 2세가 왜 두 가지를 함께 강조하고 있는지는 써니의 선택, 피네아스 게이지의 이야기, ‘그리고’의 선택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영화 속의 스프너는 감정적이지만 점차 논리적이 되어 가고, 캘빈 박사는 논리적이고 냉철하지만 조금씩 감정의 중요성을 깨달아 간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아이, 로봇’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존재는 ‘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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