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줄, 하이쿠

일본에만 있는 전통시로 ‘하이쿠(俳句)’라는 것이 있어.
하이쿠는 5, 7, 5의 음수율을 지닌 17자로 된 일본의 짧은 정형시야.
이렇게 설명하면 재미없어지니까,

그냥 ‘하이쿠는 한 줄짜리 시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형태의 시다’라고 생각하면 되.
하이쿠는 대개 계절과 자연을 노래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실존에 관한 것이기도 해.

시는 압축의 미학이야.
생략하는 것,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지.
좋은 시를 읽으면 큼지막한 여백 때문에 생각이 더 깊어지게 되지.
하이쿠는 압축과 생략이라는 면에서 보면 시의 왕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예를 들면 이런 거야.

“가을이 깊었는데
이 애벌레는
아직도 나비가 못 되었구나”

이 하이쿠는 하이쿠의 일인자로 추앙받는 마쓰오 바쇼(松尾芭蕉)가 쓴 거야.
근데, 꼭 내 이야기 같네.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이것 역시 바쇼의 대표작 중 하나야.
바쇼의 시는 단순하고 쉬워서 읽는 맛이 좋아.
그러면서도 송곳으로 찌르듯 핵심에 도달해.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 버리지.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승려 시인인 타다토모의 하이쿠야.
과거와 현재가 한 줄에 담겨 있어.
나무의 일부였던 나뭇가지는 지금은 불에 타 숯이 되었어.
숯은 먼지가 되어 하늘을 해맬 것이고 일부는 땅으로 흡수되겠지.
여기서 숯은 인간을 의미하는 것 같아.

난 가끔 하이쿠를 읽을 때마다,
하루를 생각해.
긴 삶에서 바로 오늘 하루!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 안에서 죽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 속에서 죽는다.”
이건 플루타르크(Plutarch)의 말이야.
재밌게도 하루에 대해 한 줄로 말하네.

하루에 하나씩,
좋은 스승과 같은 한 줄을 모아두고 싶어.

그런 하루와 한 줄이 쌓이면,
하루는 365일이 되고 한 줄은 356줄이 되겠지.

오늘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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