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영과 지식관리시스템

지식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두뇌에 존재한다. 따라서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지식이 무형자산이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과 20 년 전만 해도 기업의 핵심 자산은 돈과 설비와 같은 유형자산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유형자산만으로는 증가하는 불확실성과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처하기 어렵다.

지식사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은 기업으로 하여금 새로운 경영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기업의 본질은 지식을 창조하고 모으고 공유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기업의 관점에서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은 부가 요소가 아닌 생존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지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경영에 성공하는 기업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왜일까? 보이지 않는 지식은 관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식은 아무리 사용해도 줄어들지 않으며, 다른 지식과 연결되어 진화를 거듭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식은 무형의 자산이기 때문에 완전히 어느 한 조직에 귀속되기도 어렵다. 이러한 지식의 고유한 속성 때문에 지식경영을 성공적으로 도입하고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지식경영에 대한 논의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지식경영 = 지식관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식경영은 경영 전반에 걸친 패러다임으로서의 경영원리이다. 지식경영은 조직, 구성원, 문화, 인프라 등 기업을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에 작용된다. 이에 반해 지식관리는 기업에서 지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관리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서 주로 지식관리시스템(Knowledge Management System-이하 KMS 로 칭함)으로 귀결되는 정보기술에 바탕은 두고 있는 개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식관리는 지식경영의 필수 요소 중의 하나이다.


최첨단 지식관리시스템은 필요 없다: 한국 얀센과 마이크로소프트

앞서 언급했듯이 KMS 는 지식경영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 말을 최첨단 KMS 가 필수적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IMF 라는 시련을 겪고 있던 1997 년 한국 얀센은 무좀약 한 제품으로 250 억 원이라는 매출을 올렸다. 한국 얀센의 성공 뒤에는 성공적인 지식경영과 KMS 가 자리 잡고 있다. 250 억 원 매출을 가능하게 한 한국 얀센의 KMS는 어떤 모습일까? 놀랍게도 한국 얀센은 근거리통신망(LAN)에 기반을 둔 MS 아웃룩(전자우편 시스템)을 활용했다. 수백 억 원을 투자한 최첨단 지식관리시스템을 도입하고 본전도 뽑지 못하고 있는 많은 기업과 비교해보라. 단순하지만 시스템의 활용도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얀 센은 KMS 를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했던 것이다.

한국 얀센의 경우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세계 일류기업으로 손꼽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도 한국 얀센과 유사하다. 정보기술의 대표 주자로 알려져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E-mail 로 지식경영을 시작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마이크로소프트는 지식공유의 활성화를 위한 도구로 E-mail 을 중점적으로 활용했다. 전자결제부터, 휴가신청, 업무관련 보고서, 회사의 최근 동향까지 거의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을 E-mail 로 해결한 것이다. 단 한번의 대면 회의도 없이 18 개월 동안 진행된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무리 지은 경우도 있었다.

최첨단 KMS 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KMS 는 회사의 핵심 업무와 전략에 적합한 것이면 충분하다. KMS 는 멋이 아니라 활용을 위한 것이다.


비용절감을 넘어 수익창출을 지향한다: 아메리칸 항공

미국 최고의 항공회사인 아메리칸 항공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과거, 항공회사의 직접 고객인 대리점들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고객의 비행기 좌석을 예약할 수 있었다. 아메리칸 항공은 세계 최초로 좌석 예약에 대한 모든 정보를 총괄하여 조회할 수 있는 예약시스템(예약시스템은 고객 지식에 중점을 두고 있는 지식관리시스템의 한 유형이다)을 개발하여 여행 대리점들이 고객의 앞에서 좌석의 유무를 확인하고 예약을 바로 할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는? 아메리칸 항공은 시장 점유율이 1 위 업체로 급부상했다.

계속해서 아메리칸 항공은 지식을 이용한 새로운 전략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첫째, 아메리카 항공의 좌석예약시스템에 다른 항공회사의 항공경로가 소개되는 경우에는 이에 대한 수수료를 지불하도록 하였다. 실제 아메리칸 항공의 가장 큰 수익은 항공권의 판매가 아니라 예약시스템의 수수료이다. 1995 년 이익의 44%가 예약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 둘째, 다른 항공회사들이 이러한 좌석예약시스템을 모방하였지만 아메리칸 항공은 예약 시스템을 더 확장하여 선도기업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아메리칸 항공의 예약시스템은 비행기, 호텔, 렌터카에 이르기까지 여행에 대한 종합 여행정보 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다. 여행을 하는 고객은 항공권외에 호텔, 렌터카까지 예약이 가능하므로 좌석예약시스템을 통해 원 스톱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다. 셋째, 고객의 필요에 따른 다양한 가격정책을 실시하였다. 항공회사의 입장에서는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그리고 단체여행과 비즈니스 여행자와 같이 시기와 고객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가격전략은 과거의 구체적인 정보와 지식에 의해 효과적으로 설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메리칸 항공은 장기간의 경험을 축적하여 이를 지식으로 활용하여 가격전략의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KMS 의 세계적인 전문가인 미국 텍사스 대학의 토머스 데이븐포트 교수는 지식경영을도입했을 때 당장 손에 잡히는 성과는 비용절감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비용절감에 중점을 두는 지식경영은 성공하기 어렵다. 현대 경영에서 비용절감은 다운사이징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지식은 직원의 두뇌 속에 존재한다. 인력감축을 위해 자신의 지식을 내놓을 직원은 없다. 비용절감을 외치지 말고 수익 창출에 전력을 다하라. 그리고 늘어난 수익을 직원들과 공유하라. 이것이 지식의 공유를 활성화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철저한 지식경영의 모범사례: 스칸디아

스웨덴의 글로벌 금융보험 그룹인 스칸디아는 조직 내의 지적 자본을 계량화하고 인사, 전략 등의 경영활동에 적용하며 주주들에게 공개한 세계 최초의 회사이다. 스칸디아 그룹은 고객가치 창출을 위하여 IC 지수(Intellectual Capital Index)를 개발하고 이를 매년 회계 연감에 재무제표와 더불어 수치를 공개하고 있다. IC 자산 중 특히 고객자산인 고객가치를 96 년부터 개발하여 고객가치 창출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 이 회사는 고객 서비스가 다양해지고 이들에 대한 자료가 급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지식을 광범위하게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1991 년에 전사차원의 지식관리시스템 구축을 포함한 지식경영 캠페인을 벌이게 되었던 것이다.

스칸디아는 지적자본을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무형의 경영자산을 총칭한다고 규정하고, 지적자본이 지식시대에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요소라고 파악하였다. 특히, 고객과의 밀접한 관계, 우수한 조직 프로세스, 조직구조와 조직 내에 축적된 지식(업무지식, 노하우, 특허,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992 년 자사 내의 지적 자본에 대한 인벤토리 작업에 들어갔으며, 당시 파악한 지적자본은 상표권, 특허, 고객 데이터베이스, 펀드관리 시스템, 정보 시스템, 주요 인적자원, 제휴 파트너 등이었다. 스칸디아가 이러한 지적자본에 기반을 둔 성과보고를 추진하게 된 것은 첫째는 재무적으로 건전한 상태에 있던 기업들이 갑자기 도산하는 경우를 보게 되면서 비재무적 기업분석 모델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으며, 둘째는 급변하는 금융, 보험업계의 경영환경 때문이었다.

스칸디아는 수익성과 지속적인 성장능력을 균형 있게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전략수립에도 활용하고 있다. 즉 지적자본 개발을 통한 기업가치 증대를 위해 사업계획·집행·평가의 전 과정에 걸친 경영혁신 노력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지적자본에 대한 평가지표들을 개발하여 ‘스칸디아 지적자본 네비게이터 모델’로 체계화하였다. 지적자본 네비게이터는 재무 중심, 고객 중심, 프로세스 중심, 개선 및 발전 중심, 인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델을 활용하여 현재 경영활동이 수익을 극대화하고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측정하고 결과를 경영전략에 반영하고 있다.

두 가지만 기억하자. 첫째, KMS 는 지식경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내가 아는 국내의 대기업은 수백 억 원을 투자해 최첨단 KMS 를 도입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최고경영자는 KMS 를 도입하면 지식경영이 완성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기계는 지식을 창조하지 못한다. 지식의 창조는 언제나 인간만이 할 수 있다. KMS 는 ‘지식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 그릇이 좋다고 음식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아니다. 둘째, 지식경영은 한번 시작하고 마는 경영기법이 아니다. 비즈니스 환경과 지식 그리고 고객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마찬가지로 지식경영 역시 철저하게 진화해야 한다. 인간이 배움을 멈추지 않듯이 지식경영도 멈추면 안 된다.

출처 : 주식회사 녹십자 사보 2002년 11-12 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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