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봤다. 내가 알아본 바로 이 영화의 평은 대충 이랬다. 남자들은 별로라는 의견이 많았고,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좋은 평을 주었다. 나는 재밌게 봤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발견하고 느낀 것 몇 가지를 적어 본다.

하나, 꽤 괜찮은 남자 배우 발견. 남자 주인공 ‘쥰세이’ 역을 맡은 배우는 ‘다케노우치 유타카’이다. 그는 잘 생겼으나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목소리는 약간 거칠면서도 편안했다. 조금 마른 듯 했으나 빈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느끼하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보다 더 훌륭한 배우가 될 것이다. ‘아오이’ 역의 ‘진혜림’은 잘 모르겠다. 영화 속 캐릭터를 보면 쥰세이는 감성적이고 이상적이다. 그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열정’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아오이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녀는 쥰세이보다는 ‘냉정’으로 조금 더 가 있다.

둘, 봄. 이 영화의 전환은 늘 ‘봄’이다. 왜? ‘봄’이 아니라 ‘가을’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가을은 쓸쓸하고 봄은 좀 더 능동적이지 않은가. ‘냉정과 열정 사이’를 표현해줄 수 있는 상징으로 겨울과 여름 사이에 있는 봄이 적절해서가 아닐까. 봄과 가을 둘 다 뜨거움과 차가움의 중간에 있지만, 가을의 ‘낙엽(떨어짐)’ 보다는 봄의 ‘꽃망울(오름)’이 영화의 분위기와 더 잘 어울려서가 아닐까. 여자 주인공 아오이의 생일(5월 25일)이 봄의 절정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결정적으로 그녀의 이름, 아오이(あおい)에 ‘풀, 푸르다’ 같은 봄의 이미지가 잘 담겨져 있으니까. 그래서 봄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셋, 복원사. 이 영화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촬영이 세심하다. 원작(소설)이 좋다보니 대사 역시 괜찮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복원사는 죽어가는 것을 되살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아는 어느 꿈벗도 쥰세이와 직업은 다르지만 그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일에 이 정도의 의미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은 영화든 책이든 어디서든 좋은 일이다. 구본형 사부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자신이 지금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그 일의 주인도 되고 그 일의 종이 되기도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내용보다는 대하는 방식에 따라 일은 그 모습을 달리 합니다.”

사부는 이렇게도 말한다.

“내 생각으로는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직업인은 결코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은 결국 세상과 인간과 삶에 대한 ‘자신의 견해’거든요. 철학이 없으면 어느 것도 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세상과 인간과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없다면 자신을 세상에 표현할 수 없지요. 예술이란 세상에 대한 자신의 표현인데 말입니다.”

훼손된 미술작품을 복원하는 쥰세이와 변화경영 전문가 구본형의 말은 멋지게 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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