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異見)의 이로움

결론을 내기 힘든 회의가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우산도 없이 장대비에 푹 젖은 모양새로 지쳐가기 시작합니다. 모두들 말수는 점점 더 줄어들고 문제를 대충 매듭짓고 회의를 끝내고 싶어합니다. 이때 누군가 새로운 의견이라도 제기할라치면 들리지 않는 탄성과 보이지 않는 원망의 눈초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웁니다.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결국 가장 적당해 보이는 결론이 채택되며 회의는 끝을 맺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숨겨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회의를 길게 끌까 눈치를 보기도 하고, 논쟁을 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내가 입을지 모를 피해를 걱정하며 원치 않는 결론에 손을 들게 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해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처해있는 칙칙한 회의 분위기를 깨줄 모두가 적당히 만족할만한 안을 하나 골라 드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마음껏 다른 의견을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런 분위기와 상황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몇 가지 사례를 살펴 보면서, 우리가 남들과 비슷한 결론에 손을 들게 되는 이유와 그러한 행동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례 하나

21세기 초, 많은 미국 회사들이 부정부패로 심각한 어려움 겪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Enron, WorldCom, Tyco와 같은 기업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Enron의 경우 2000년 22,000여명의 임직원이 1,110억 달러의 매출액을 달성했던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전기, 천연가스, 통신사업 회사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기업인수와 이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현금이 고갈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이를 감추기 위해 분식회계라는 중요한 범죄를 저질렀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회사가 파산하게 된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견이 제기되고, 존중되는 건전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모두 예외 없이 침묵했고, 잘못된 결정을 수정하거나 철회할 기회를 스스로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례 둘

자금을 공동으로 출자하고 함께 투자 결정을 내리는 모임 몇 개가 있습니다. ‘구성원 사이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가장 낮은 수익을 내는 모임’과 ‘가장 높은 수익을 내는 모임’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아래와 같이 두 가지 유형의 모임이 있습니다.

  1. 모임 구성원들이 서로 잘 알고, 함께 식사하며, 정에 얽매여 있는 모임
  2. 사교적 관계를 제한하고 수익을 내는데 초점을 맞춘 논쟁적 모임

짐작하시겠지만 두 번째 모임은 높은 수익을 낸 반면, 첫 번째 모임은 매우 낮은 수익률을 낸다고 합니다. 서로가 잘 알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는 모임의 경우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현저하게 낮은 수익률로 이어진 것입니다.


사례 셋

미국의 연방 법원은 세 명의 판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특정 판사가 보수적 또는 진보적 신념을 가진 판사 둘과 재판을 진행할 경우, 서로에게 그리고 최종 판결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판사들이 법에 따라서만 결정하고 판결을 내리면 정치적 신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고 합니다.

공화당이 지명한 두 명의 판사가 함께 판결을 내리면, 특정 판사가 전형적으로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강화됐다고 합니다. 반면에 민주당이 지명한  두 명의 판사들과 함께 판결을 내리면, 전형적으로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강화됐다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정도가 판결이라는 결과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는가

그렇다면 위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달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사회에는 왜 이견이 필요한가’의 저자 카스 R. 선스타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동조’입니다. 이는 한 집단 내의 구성원들이 실제 또는 가상의 인물이나 집단의 압력을 받아들여 자신의 행동과 의견을 바꾸게 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쏠림 현상’입니다. 우리가 집단이 특정 경향에 따라 생각을 맞추고, 의사 결정이나 행동을 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는 ‘집단 편향성’입니다.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결정할 때 보다 토론을 거쳐 집단으로 결정할 때  좀 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언뜻 보면 동조나 쏠림 현상은 많은 경우 대단히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외형적으로는 굉장히 오랜 시간 토의를 지속하며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이견을 일부 받아들이기도 하며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모두가 독자적인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할 경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조나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회사나 사회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공유하려는 노력을 쉽게 포기하고, 의심 없이 타인을 따르게 되는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사례들에서도 확인했듯이 이러한 실수들이 반복되면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럼 어떤 방법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각 조직의 여건과 상황에 적합한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적 방법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생존율을 극대화하는 꿀벌의 사례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꿀벌의 민주주의

꿀벌은 구성원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매년 새로운 보금자리를 선택하는데, 최적의 집터를 결정하기 위해 민주주의적인 방법으로 각각의 후보지를 평가합니다. 매년 일정한 시기에 몇 개의 정찰벌 그룹이 집터를 찾으러 나서고, 그들은 입구 높이, 부피 등 정보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집터의  속성을 파악하여 집단으로 돌아옵니다.

이러한 정보를 기준으로 정찰벌 그룹은 지지자를 모으는 춤을 열렬하게 춥니다. 그리고 예전 집터에 있던 벌들은 정찰벌들이 춤을 통해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각 후보지를 비교하게 되고, 가장 최적의 집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러한 꿀벌의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한 코넬 대학의 토머스 D. 실리는 우리가 꿀벌에게서 배워야 할 교훈을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공동의 이익과 상호 존중에 기초한 개인들로 결정 집단을 구성하라.
둘째, 집단적 사고에서 지도자의 영향을 최소화하라.
셋째,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라.
넷째, 논쟁을 통해 집단 지식을 종합하라.
다섯째, 응집력, 정확도, 속도에 대한 정족수를 활용하라.

꿀벌 사회에서는 어떤 꿀벌도 다른 구성원들에게 정확한 정보 없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제공된 정보에 바탕하여 최선의 의사결정을 할뿐입니다. 물론 여왕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는 꿀벌들이 ‘개인 역량의 산물’이 ‘민주주의적인 집단 사고의 결과’를 뛰어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오랜 시간에 거쳐 터득해 왔기 때문입니다.

인간 사회는 어떨까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줍니다. 최선의 답을 구하기 위해 그 영향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할 때도 있지만 그건 본인만의 착각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회사 조직 내에서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의든 타의든 그러한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남들보다 더 넓은 권한과 더 큰 권력을 가진 자리에 앉았다고 생각한다면 주위를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나 아닌 다른 구성원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생각과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혹시 내가 거짓된 민주주의를 이끌어내는 존재가 아닌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와 ‘꿀벌의 민주주의’를 토대로 재구성됐습니다.

참고:
1) 카스 R. 선스타인,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후마니타스, 2009
2) 토머스 D. 실리, 꿀벌의 민주주의, 에코리브르, 2012
3) Image courtesy of Sebastiaan ter Burg by IM-CREATOR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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